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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트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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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1 21:26 스니커즈 이야기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저번 포스팅에 이어서 참으로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요상한 관계의 나이키와 오니츠카 타이거(현 ASICS)를 포스팅 할까 합니다.


오니츠카 기히치로(Onitsuka Kihachiro)는 그의 나이 31세가 되던 1949년“주식회사 오니츠카”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세계 5대 스포츠 브랜드 성장한 ASICS의 첫걸음이 되었으며, 1951년 여름, 오니츠카는 문득 반찬 접시에 놓여진 문어 다리의 빨판을 보고 영감을 얻어 아웃솔을 변형시킨 농구화를 제작, 출시하게 됩니다.

그는 직접 농구팀을 찾아가 선수와 코치들에게 신어 보게 하였고 놀라운 기능성에 감탄한 코치들은 선수들에게 전부 오니츠카 농구화를 신도록 하여 오니츠카는 농구화 사업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1953년, Terasawa Tooru라는 그 당시의 최고의 마라토너와 일을 시작하면서, 오니츠카는 오토바이의 냉각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물집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장거리용 러닝화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직이 치밀하지 않은 원단을 신발의 윗부분에 사용하였고, 신발 앞과 옆 부분에는 여러 공기 구멍을 만들어 신발의 통기성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이와 함께 그는 더 부드러운 충격흡수를 위해 2중 Sole 디자인을 적용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노력을 통해 Terasawa 선수는 처음으로 물집이 생기지 않고 42.195km를 완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 로마에서 Abebe선수가 맨발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을
지켜본 오니츠카는 그 다음해인 1961년 마이니치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역시나 맨발로 경기에 임하려는 Abebe선수에게 일본의 거리에는 부서진 유리조각 등이 많이 널려져 있기 때문에 맨발로 경기에 출전하면 큰 부상의 위험이 있다며 타이거 러닝화를 신도록 설득하였습니다. 그리고 Abebe선수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가벼운 타이거 신발을 신고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됩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오니츠카 타이거란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 나이키의 창업자중 한명인 필립 나이트(Philip Knight)는 1962년 일본 여행을 하다가(그 당시 회계사였다거나 아니면 졸업 후 사업 구상차 갔다가 라는 여러설이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오니츠카 기히치로와 대화를 하게 되는데 그때 필립 나이트는 즉석에서 작명한 Blue Ribbon Sports의 대리인으로 오니츠카 제품을 수입 판매할 기회를 달라고 했고 오니츠카도 필립 나이트에게 미국 내 독점 판매권을 주게 됩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필립 나이트는 육상 코치였던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과 공동 출자해서 나이키의 전신인 BRS(Blue Ribbon Sports)를 설립하고 미국에서 오니츠카 타이거를 팔기 시작합니다.

판매 첫해는 판매도 이익도 미미했지만 미국 내에서 싸고 신축성 좋은 운동화의 수요 잠재력을 확인하고 1971년도부터는 자비로 타이거의 디자인을 카피해서(즉 나이키도 처음 시작은 남의 디자인을 베껴서 판매, 여기 관련된 제품이 코르데즈인데 다음에 포스팅 하겠습니다.) 시장에 내놓게 됩니다. 사실 처음엔 필립 나이트는 새 브랜드 이름으로 “SIX”를 생각하는데 대학 육상 선수 때의 친구이자 회사 동료였던 제프 존슨(이 사람을 위해서 나중에 특별히 ‘97 맥스 모델도 출시 이것도 나중에 포스팅 하겠습니다.)  그리스 승리의 여신인 “니케”꿈을 꾸고서 새 회사 이름을 나이키로 제안하고(NIKE.inc.)를 제안, 채택되게 됩니다.
또 심벌인 스워시(Swoosh)는 포틀랜드주립대학 그래픽디자인학과의 여학생인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단돈 35달러에 "V"를 형상화한 스워시를 의뢰해 만들게 됩니다.

지금은 라이벌이라고 하기엔 그 격차가 너무 크지만 나이키의 탄생엔 오니츠카 타이거가 있었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습니다.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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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존트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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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6 21:30 스니커즈 이야기

           VS

흔히들 세계 1위의 스포츠 기업인 나이키와 2위인 아디다스가 서로 라이벌 관계로 인식하지만 사실 아디다스의 진정한 라이벌은 퓨마입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일단 아디다스의 탄생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아디다스는 독일의 헤르조게나우하라에서 1920년 형인 아돌프 다슬러(Adolf Dasler)와 루돌프 다슬러(Rudolf Dasler)는 평소에 신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어머니 세탁소에서 첫번째 트레이닝 화를 제작하게 됩니다. 그 후 4년뒤에 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이 Gebrer Dassler OHG란 회사를 설립하고 하루에 50켤레의 신발을 생산합니다. 3년 뒤에 사세를 확장하게 되자 Gebrer Dassler Schuhfabrik 로 회사명을 변경합니다.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다슬러 운동화를 선보이고 1936년 독일 올림픽때는 육상 선수를 후원하게 되는데 그 선수가 4관왕을 차지하게 되자 Gebrer Dassler Schuhfabrik는 무척 유명해지게 됩니다.  하지만 1936년 올림픽은 나치가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 홍보했던 올림픽이라 어느정도 나치에 협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2차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형이 아돌프 다슬러가 동생인 루돌프 다슬러를 나치에 협력했던 인사로 미군에 고발합니다. (이 이후로 거의 둘 사이는 앙숙이 됩니다.)

결국 형은 1948년 자신의 성과 이름을 합쳐 아디다스란 이름으로 회사 이름을 정하고 동생은 퓨마란 이름으로 독립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그 후 티격태격 시장(특히 유럽)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경쟁하게 되는데 결국 시대의 흐름 때문인지 결국 아디다스는 1990년대 가족 경영에서 주식회사로 탈바꿈하며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퓨마도 마찬가지로 전에 포스팅 했드시 1993년도에 요한 자이츠를 영입하면서 발전합니다.
가족 경영할 때만 해도 두 기업은 서로 으르렁 거렸지만 지금은 외부 인사를 CEO로 두면서 많이 희석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아직도 서로 경쟁하는 관계는 맞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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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존트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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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형 2011/11/23 11:45  Addr  Edit/Del  Reply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2. 고명진 2012/01/05 08:52  Addr  Edit/Del  Reply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2009/05/11 18:18 나의 일상




얼마전 꽁짜 티켓이 생기는 바람에 카쉬전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공짜가 아니더라도 요새 DSLR에 취미가 생기면서 꼭 가보려고 했던 전시회였는데 늦게나마 가보게 되었네요. 근데 간날이 마지막 전시회날이나보니 잘못했으면 공짜고 뭐고 보지 못하고 후회 할 뻔 했습니다.!!!

                            (전시회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된 관계로 밖에서만 사진 촬영)

전시회 내부에선 사진 옆에 어떻게 이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주석을 달아놔서 달랑 사진만 보는게 아니라 어떻게 이런 사진이 찍히게 되었는지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몰입해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단점은 앞사람이 넘 천천히 보게 되기에 전체적으로 줄이 밀리더군요!)

자신의 의도와 빛의 명암으로 찍은 그의 사진은 정말 인물 사진의 거장이란 표현에 절로 고개가 숙여 집니다. 

제가 간 8일이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5월15일부터 7월19일까지 전시회를 한다고 하니 사진에 취미가 없다고 하셔도 여유 되시면 한번 가보세요!

참! 공짜표 주신 소니알파클럽의 싱아맘님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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